그리움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굿바이 평양 (양영희 2009)>를 보고
굿바이 평양.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 장면이 나오고 화면이 까맣게 될 때까지 끝난 줄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전혀 웅장하지도 않았고 어떤 대단한 대사도 없었지만 잔잔한 그리움과 감동이 묻어나 있었다. 평범한 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 속에 단지 우리에게 낯선 평양이란 장소가 더해져 비칠 뿐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김일성 동상과 군무처럼 보이는 그들의 공연은 생소하기도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북한까지 2Km라고 한다. 그런데 저렇게 가까운 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이다. 하루 2시간의 전기사용시간,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스타킹을 신을 수 없는 자유. 특히나 평양대극장에서 선화와 영희가 나눈 대화는 잊어지지가 않는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대화는 자신이 본 영화를 소개하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었다.
평양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주제였나 보다. 이것이 현실에 비춰지니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만나면 자연스럽게 “어떤 영화보세요?”, “추천해주실 만한 영화 있나요?” 등 흔히 하는 질문하는 것들이지만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못한 주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정작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 비참하다. 그리고 그것을 익숙하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북한의 주민들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 지극히 한정적인 자유로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라니. 보통의 영화를 보면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각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굿바이평양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평양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을 일본에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등장하는 티브이를 보면서 체조를 하는 아버지(영희의 아버지)장면이나 오사카는 외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일본에 계시는 외할아버지 댁에는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맛있는 것을 사주시고 밤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등 다양한 추억이 많다. 예전에는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외할아버지 이불속에 장난감 뱀을 넣어놓고 뱀이 나왔다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고, 초밥을 먹다가 회만 먹고 싶다며 밥은 모두 외할아버지께 드린 적도 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오랫동안 못 보니(영화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보고 싶다며 가끔 전화가 온다.
여기서 느끼는 나의 감정이 그리움이라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얼마나 그리울까? 그리움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당장 통일이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다보면 아버지와 큰 아들이 평양에서 산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서서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걷는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마지막에 잡히는 그들의 뒷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을 맴돈다.
영화를 보면서 미소 짓게 되는 장면도 여럿 있었는데 선화의 귀여운 노래나 시낭송, 좋아하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은 마치 우리가 그들의 가족이 된 것만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 했고 더불어 과거의 우리 가족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장면이기도 했다. 순수하게 웃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구나하고 다시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 순으로 흐르지만 끝부분에서는 과거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집이 정전됐지만 행복하게 웃는 가족들. “영광스러운 정전!”이라며 재미있는 말을 하는 선화는 영화 끝에 우울했던 나조차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장면을 마지막에 담은 이유는 이 때로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기 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에 영화는 베드 엔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처럼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끝으로 감상문을 쓰면서 든 생각인데 영화의 제목이 ‘굿바이’평양이라니, ‘리턴’ 평양일리턴’ 수는 없었을까. 굿바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해 슬프다. 지금도 그들의 가족은 평양에서 살아가고 있을 텐데 말이다. ‘다시 보자 평양’이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이런 나의 바람은 일장춘몽일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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